Betty Edwards
2012
Tarcher
갱신 2026. 5
그림 그리기 교본이다. 수많은 그림 그리기 교본들이 요령 설명에 치중하는 와중에, 원리를 파고드는 책들도 있다. 이 책이 원리를 설명하는 책 중에서도 유명세를 구가한 책이다.
저자는 미술교사였다. 학생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서 그걸 자신의 수업에 도입하고 책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1979년에 이 책을 출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흘러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다음 판본에 덧붙여 나갔다. 2012년에 쓴 이 네 번째 판본이 최신본이다. 저자가 발견했다는 방법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림 그리기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1960~70년대에 인간의 뇌가 우뇌와 좌뇌로 나뉘어 있고 그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어느 과학자의 이론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 뇌 이론을 바탕으로 우뇌를 활성화하고 좌뇌를 비활성화해야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판본에는 더 나아가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알고 그 기능을 의식적으로 활용해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 뇌과학 이론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그 이론을 자신의 미술교육에 접목하면서 발생시킨 논리적 비약은 문제가 심각하다. 초판본이 출간되어 대중의 인기를 얻자 뇌과학자들은 그녀의 논리 속 오류를 지적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미술 교육법이 학생들의 실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학생들과 미술교사들의 여론은 이 책에 부정적이지 않다. 저자의 뇌 이론이 정확하지 않을지언정 저자의 그림 그리기 교습은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모로는 저자의 그림 그리기 교습과 이 네 번째 판본에 덧붙여진 창의성 증진 방안에도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저자는 미술, 혹은 예술이라는 분야에 과학적 지식을 도입해서 체계적으로 예술작업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꼼꼼히 했다. 흔치 않은 시도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과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각종 유명인들의 의견을 글 곳곳에 인용하는데, 이 인용구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만 해도 많은 독서량과 연구가 필요한 일이다.
초판본의 출간 후에도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그 내용을 책에 추가하는 끈질김과 성실성을 보였다.
책 전체가 잘못된 논리를 바탕으로 쓰였다. 과학자들로부터 이 지적을 당하자 자신의 교습법을 따라 한 학생들의 그림 실력이 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저자는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마저도 비논리적임을 저자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원래 무슨 교습법이든 그림은 그리면 그릴수록 는다. 특히 초보자는 더 그렇다. 스스로의 논리 오류를 이해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수용하면 본인이 쓴 책 전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저자는 비판을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다.
잘못된 논리로 가르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그림을 가르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올바른 그림 그리기를 따라 하다 보면 틀린 그림 그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 부정확함이 결과에 도드라지진 않지만, 저자는 3차원 물체를 2차원 화폭에 담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기하학적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학생들에게 축과 각도를 가르친다.
저자는 그림을 정물화로 국한시켜서 정의한다. 초보자들에게 그림을 차근차근 가르치기 위해서 정물화부터 가르칠지언정, 그림 교습서에서 그림에 대한 정의는 똑바로 해야 마땅하다. 책을 다 읽어 보면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저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삽입된 수많은 인용구들은 저자 본인의 혹시 모를 부족함을 다른 유명인들의 권위로 메워 보려는 시도다.
책 후반부에 추가된 창의성에 대한 기술은 저자의 허약한 논리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준다. 창의성 자체에 대한 이해가 견고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컴퓨터 분야나 디자인 분야까지 다루며 자신의 억지가 통찰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저자는 중학교 미술교사로서 일하며 똑똑한 학생도 그림을 못 그리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대학에 다시 들어가 나름의 연구를 하다가 우연찮게 우뇌와 좌뇌에 관한 이론을 접했다. 그 이론을 미술교육에 접목해서 쓴 박사논문이 이 책의 뼈대가 됐다. 하지만 그 접목 방식이 잘못됐음을 박사논문 심사위원회는 지적하지 않았다. (예술대학의 전형적인 문제다.) 저자의 책이 출간되고 몇 년 후 저자가 활용한 뇌과학 이론을 발표한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았다. 이 사실이 저자의 확증편향을 강화해 줬을 것으로 추측된다.
1979년에 출간되고 난 후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친 책이다. 이후 다른 저자가 쓴 책에도 이 책의 오른쪽 뇌로 그려야 한다는 이론이 소개되고 지지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그림을 그릴 때 오른쪽 뇌만 작동해야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양쪽 뇌 부위가 모두 작동해야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진다. 저자는 오른쪽 뇌야말로 예술가의 뇌이며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부위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논리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주장하는 이의 분별력도 의심하게 만든다.
글의 내용이나 글 쓰는 방식, 그리고 글을 쓰게 된 배경을 보면, 저자가 권위와 계급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사고관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