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N. Stearn
2001
Routledge
갱신 2022. 3
소비주의는 이제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보편적이어서 이 단어를 쓴다는 게 오히려 생소하고 어색할 지경이 되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람이라면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 단어와 개념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할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필요도 없는 물건을 끊임없이 사대는 걸까? 서울 시내 자동차 운행 제한 속도가 시속 50킬로미터이고 고속도로는 기껏해야 110킬로미터인 곳에서 굳이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요즘 서울 거리를 운전하다보면 벤츠는 베를린보다 서울에 더 많이 굴러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까? 라는 의문에 대한 학술적인 대답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소비주의에 대해 도덕적 가치판단을 들이대며 공격하거나, 혹은 소비주의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설파하는 책들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소비주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탐색하는 학술서는 서점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이 책은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진 학술서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짚어놨다. 덕분에 분량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학술서답게 세심한 논리를 구사한다. 진정한 대중서가 되기에 장애가 될 정도라서 단점으로도 볼 수 있다.
소비주의가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시점부터 세계 여러나라에 퍼지게 된 양상을 두루두루 기술하면서도 구체적인 예를 함께 적어 놓았다. 덕분에 독자는 이 주제에 대해 균형있는 조망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자기부정법'을 구사한다. ('자기부정법'이란 모로가 방금 만든 표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가 적어놓은 문장과 반대되는 내용을 바로 다음 문장에 적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 둥글다.'라는 문장을 썼으면 바로 다음 문장에 '하지만, 네모스름한 사과도 있다.'라고 적는 식이다.) 학자는 이론을 다루기 때문에 이론이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도 자신의 말이 틀릴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하는데, 그러다보면 '자기부정법'을 구사할 위험이 있다. 주장과 그에 상반된 주장을 문장마다 병치시키면 읽는 사람의 머리에는 아무것도 안 남게 된다는 점을 이 책의 저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 하다. '이럴 수 있지만, 이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은 논리를 따지는 당사자에게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듣는 사람에게는 하나마나 한 말이다.
글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한국에 대한 언급이 두어 줄 나온다. 일본에 대한 악감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자제품을 동경하고 소비하던 한국 소비자들이 90년대 들어서는 전자제품에 더해 일본음악과 드라마까지 적극적으로 소비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정치적 상황과 국민적 감정이 소비주의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취지의 내용이다.